도서관과 사서가 등장하는 단편소설 다섯 편을 담은 소설집. 「해빙기」는 고교 동창인 수아와 은설이 20년 만에 도서관 사서와 작가가 되어 다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숲으로」에서는 교도소 도서관 설립을 위해 도서관 사서와 교도소 직원이 만난다. 「흔적들」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수빈이 사서가 되기 위해 일을 그만두면서 자신을 대신할 아르바이트생 유림을 만나는 이야기다. 「가까이」는 도서관 사서에게 어느 날 낯선 여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서 시작한다. 「시위」는 계약직 사서를 내보내야만 하는 오하영 과장의 분투기를 그렸다.
목차
해빙기 8
숲으로 40
흔적들 84
가까이 128
시위 160
P. 120 '언젠가는 신나는 내리막이 나올 줄 알았어.'
수빈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리막인데 신나다니 긍정적이네.'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활용만 하면서 살아가는 때가 올 줄 알았어. 근데 뭐 이러냐. 언제까지 준비만 해? 아 진짜 피곤해.'
'피곤하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어. 나를, 나를, 너무 오래 살아야 돼. 맘에도 안 드는데.'
'난 맘에 드는데. 나쁘지 않아, 이 정도면.'
-「흔적들」 中
P. 195~196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한순간도 잊지 않기를. 언제나 생생하게 느끼기를 바랐던 멍청하고 갑갑했던 때. 그런 탓인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몇 개의 조각들이 있다. 거의 다 지워졌는데, 그렇게도 무언가를 부여잡으려 했던 팽팽하고 악착같던 자신의 모습은 이제 다 사라졌는데…. 오하영은 그 조각들이 마치 저녁 불이 번지고 있는 마을의 창문들 사이 어디쯤 있기라도 한 듯 하염없이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