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직장'에 출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 조각을 엮어 만든 픽션 에세이입니다. 직장인으로 조직에 느끼는 부조리와 분노, 무력감을 주재료로 활용하고, 교사라는 지위에서 비롯되는 교육에 대한 고민을 양념 삼아 버무렸습니다. 일터에서 크고 작은 애환으로 울고 웃는 당신, 별것 없이 치열한 하루를 보냈을 당신과 이 『도시, 락』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담아
씹을수록 오묘한 맛이 나는 글, 시간 속에 깊은 향을 내는 사람, 함께 나누는 맛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의 무한 굴레에 빠졌다.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그저 주인이 꿴 코뚜레에 끌려 움직일 뿐. 내가 '내'가 되어 일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내' 삶을 살고 싶었다. 문제는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에 정작 '나'로서의 삶을 굴릴 힘이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살고 싶었다, '나'로.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내'가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했다, 요리를. (p.11)
모든 직업인에게 '제 몫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프로 의식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다만, 그 전에 합리적인 보수와 노동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용자가 제대로 된 노동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채 사명감만 운운한다면 그건 직업윤리가 아니라 부려 먹기 위한 술수에 불과할 뿐이다. 기계도 잘 돌아가게 하려면 적당한 쉼을 주어야 하는데, 인간 노동자를 쥐어짜며 일방적인 희생 정신을 강요하는 게 옳은 걸까. 우린 직업인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사실이 쉽게 희미해지는 듯 했다. 프로 의식과 사명감은 합리적인 노동 환경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어이없는 문제 제기에 기가 찬 나는 그날 저녁, 달콤함이 필요했다. (p.104)
이런 음식 박애주의자 같으니라고. 아니, 혁신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진정한 개방주의자, 관용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기존 틀에서 벗어남을 허락할 수 없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 나는, 그걸 차마 해물파전이라 부를 수 없었다. (p.116)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 혹자는 이 흐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작은 행복에 취해 거시적인 문제를 경시할 우려가 있다고. 시스템 안에서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지 않고 그저 소소한 행복만 바라보며 소비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개인은 무한 소비 굴레 속에서 허덕이고 자본주의 시스템만 공고해질 뿐이라고.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소확행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소비해서 사라지는 짧은 행복 말고, 함께 소비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에 남아,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숨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줄 그런 은은하고 깊은 행복 말이다.(p. 156)
동료를 의미하는 company는 com(함께)과 panis(빵)란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즉, 빵을 함께 먹는 사이, 식사를 함께하는 관계가 동료라는 뜻이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내 동료는 아니었지만 내게도 동료는 있었다.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