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마루사람들
동네를 지켜가는 삶의 이야기
책소개
1994년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원들이 동부도시공소 이름으로 활동해 오던 금호·행당·하왕지역은 재개발로 철거되는 때였습니다.
철거지역주민이 협동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해 오다 1999년에 금호1가동 선교본당과 부속 성동평화의집을 설립하게 되었고,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샛마루공동체는 협동과 공동체라는 주제로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자 부지런했던 25년의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샛마루의 첫 걸음을 함께하고 오늘도 첫 마음 그대로 샛마루를 지키고 있는 여섯 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섯 사람이 각자 걸어온 시간들이 금호·행당·하왕지역에서 만나 샛마루의 처음이 시작되는 순간, 동네의 모습은 변해가도 샛마루사람으로 남아 소박하게 꿈꾸는 6가지 소망의 다른 듯 닮은 모습. 샛마루사람들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해 보았습니다.
차례
여는 글
당신에게서 우주를 봅니다
- 나승구 신부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06지구 도봉강북지구 지구장 / 금호1가동선교본당 7대 주입신부
당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그려봅니다
- 이효섭 신부 / 금호1가동선교본당 주임신부
샛마루사람들의 삶의 자리
- 이경민 / 아키비스트 / 서울수집
첫 번째 사람, 노형섭
고향에 남아 사람들과 늘 함께 하는 삶
- 사라져버린 고향 집, 기억 속 그때 그 시절 금호동
- 젊은 날 형섭 씨: 독립, 일, 결혼
- 남들은 하지 못하는 형섭 씨만의 노하우 쌓기
- 나의 살던 집은 사라졌고, 남은 건 고작 400만원뿐이었다
- 임대아파트에 입주했지만, 뿔뿔이 흩어진 관계들
-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마음을 담아, 빈첸시오
- 형섭 씨 꿈은 가난의 지속을 멈추고, 말벗이 되어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
서울수집가의 동네구경 1
- 그 때 그 시절 금호동을 찾아서
두 번째 사람, 박용범
이 세상 복, 다 가진 용범 씨
- 선택한 집은 아니지만 선택한 삶을 살게 한 집
- 지금 사는 집은 끝까지 싸워서 얻어낸 곳이다
- 가이주단지에서 이웃과 가까이 지냈던 나날
- 드디어 아파트에 입주했지만 사는 게 숙제 같아 좋은 줄도 몰랐다
- 이웃에게 기꺼이 ‘엄마’가 되어준 용범 씨
- 피난길, 학교 가는 길, 용범 씨의 어린 시절
- 이웃끼리 품앗이 하던 시절, 출생신고도 이웃이…
- 행당동에서 오막살이 집 한 채
- 지금도 그때도 도망가지 않은 용범 씨
세 번째 사람, 정우연
포기하지 않는 마음
- 우연 씨의 결혼생활, 밀양에서 서울로 첫발을 내딛다
-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우연 씨 아이들
- 금호동 대신 부산으로
- 무산된 부산행, 우연 씨는 우연히
- 제일 좋았던 시절은 가이주단지에서 살 때였다
- 철거투쟁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가족만큼이나 끈끈한 사람들
- 기찻길이 지나고 강이 흐르는 밀양에서 나고 자란 막내
- 포기를 모르는 우연 씨가 끝까지 지켜가고 싶은 것
네 번째 사람, 이현옥
‘가난할 결심’ 현옥 씨
-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 아픈 사람 현옥 씨의 복음자리
- 같은 곳을 바라보는 남편과 자리 잡은 행당동
- 재개발지역 행당동 주민, 현옥 씨
- 철거투쟁의 작은 거인
- 주민공동체가 만들어 낸 가이주단지
- 함께 살아내며 진화해 온 주민공동체
- 못 다 이룬 공동체의 꿈
- 깊이 새긴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예수다’라는 말
- 나무를 닮고 싶은 현옥 씨
다섯 번째 사람, 양순이
순이 씨의 마음의 집, 행당동.
- 마음으로 찾은 고향
- 남원에서 서울로, 용감한 상경
- 낮선 서울에서 혼자 꾸준히 일을 해낸 순이 씨
- 가족을 이루어 열심히 살아낸 젊은 시절
- 무작정 행당동에 정착한 순이 씨
- 함께 음식 해먹고 함께 싸우며 만들어진 연대
- 가이주단지입주에서부터 54번 신협조합원이 되기까지
- 남편과의 이별, 순이 씨 곁을 지킨 사람들
- 이웃과 함께 50년 동안 살 수 있는 곳
- 에필로그
여섯 번째 사람, 이재원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 하왕5구역 세대위 위원장의 남편
-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운동과 함께 한 학창시절과 군 생활
- 지금도 종종 갑니다. 잊지 못할 고향에서의 시간들
- 아현동에서 공덕동까지, 동네가 다 놀이터
- 친구들이 이어준 인연, 연인이 되다
- 아현동에서 미아리로, 미아리에서 정릉으로, 10년 만에 낳은 선물 같은 아들
- 금호동에 온 건 우연이었지만
- 살아가는데 있어 도움이 되는 곳들
-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 이번 생은 욕심 없이, 다음 생애는 날개를 달아보자.
- 따뜻한 커피 한잔과 음악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삶
서울수집가의 동네구경 2
- 그 때 그 시절 아현동을 찾아서
닫는 글
<샛마루 사람들_동네를 지켜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마치며 - 이경민 / 아키비스트, 서울수집
저자소개
이경민
서울수집 / 아키비스트
기관 및 아티스트들과 서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아카이빙 작업 및 협업을 진행하고 전시 및 자료집 발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 연재하고 있습니다.
저서 <철거풍경>, <아파트 답사기>, <Seoul Favorite Map> 등
요약 본문일부
“‘철거투쟁 이걸 왜 하는 거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철거투쟁은 해볼 만한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지니까, 두 번은 안 되고, ‘딱, 한 번만!’이다.”
“얼마 전 다시 만나게 된 (방글라데시) 신부님에게 용범 씨가 ‘제 이름이 뭐죠?’라고 물으니, 신부님은 ‘엄마’라고 대답하셨다.
‘아니, 내 이름이 뭐냐고요?’라고 다시 물었을 때에도, ‘로사리아’라는 세례명 대신 ‘엄마!’라는 답이 돌아와, 같이 있던 모두가 크게 웃었다.”
“가까이에서 살 부대끼며 살다보니,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 과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그런 상대방 의도를 잘못 이해해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투닥거리는 날들도 있지만 안 좋은 것보다는 좋은 것이 훨씬 더 많다.
특히나 25년~30년을 함께 산전수전을 겪으며 이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라 더더욱 끈끈하다.”
한번은 철거용역업체 직원이 포크레인(굴삭기)을 끌고 온 적 있었다. 세입자주거대책을 하나도 세우지 않고, 무작위로 공가를 철거하려고 했다.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려는 순간 현옥 씨는 포크레인 삽 위로 올라갔다. 사람이 올라섰는데 아무리 철거용역업체 직원이라도 해도, 사람이 있는 채로 그걸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네 사람들과 ‘똥탄’을 만들어 던지면서 몸싸움했다. 상황이 점점 격해지면서 사람들이 다치고 쓰러졌다. 똥을 맞은 사람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서 병원엔 똥 냄새가 진동했다.
‘행당동 4.19 폭력사태’. 가장 끔찍했던 싸움의 기억이다.
옆 동네에서 재개발로 투쟁활동을 한다고, 마이크를 크게 틀어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매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욕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푸른마을이 된 하왕5구역도 재개발사업이 진행되었는데, 그 사람들과 연대하며 재개발 투쟁활동을 할 줄 몰랐다. 게다가 세대위 위원장 남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