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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띄지 않은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 춥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p.271
저희 책방을 소개할 때는 '평범의 가치를 책으로 기록하는 책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 '평범'이란 말이 점점 어렵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평범의 범주일런지 규정하기란, 평범의 기준을 제시하기란 얼마나 벅찬 일인지... 가끔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평범을 짐작해 보거나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평범을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
에서 만난 '평범'도 역시나 소중하게 갈무리 합니다. 평범이 굴레가 되고 소극적 삶의 태도가 되기도 하는 평범을, 그럼에도 간절하게 매달리고 치열하게 안주해야 하는 평범을.
증조모로부터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져 내려오는 여성 4대의 이야기에서(조금은 억지를 부려) 평범을 갈구하고 구축해온 이야기, 평범에 질식되고 구속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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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조모의 마음이 새비 아주머니에게로 기울어서, 그곳으로 기쁨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모두 흘러갈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기운 마음으로 뒤뚱거리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p.64
남성 인물들의 모지람이 안타깝다가도 그것이 무릇 몇몇의 이야기는 아니었음을 생각합니다. 국가도 이념도 길을 잃은 격변의 시대, 무지하고 무능한 남성들에게 여전히 주어지던 권위는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할 수 없었음을 짐작하며 그 비참한 시절을 견디게 해준 여성들의 연대를 애틋하게 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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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채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p.252
꼬박 100년, 4대가 지나도록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굳이 이 이야기를 젠더의 문제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서도 아무래도 이 나라에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일거라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늘진 마음을 섬세하게 공감하는 최은영 작가의 문장에 마구 밑줄을 긋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