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김소연 시인의 책들을 자꾸 모으게 되네요. 시인의 시 중에 <그래서>란 작품이 있어서냐구요? 물론이죠. ㅎㅎㅎ <그래서>라는 시를 좋아해서 ‘그래서 책방’ 이름의 유래가 되었냐 하시면… 그건 아닙니다만... 김소연 시인의 <그래서>라는 시는 참 좋습니다. 다음에 꼭! 소개해 드릴게요.
.
책방에 자리잡은 김소연 시인의 첫 책은 [한글자 사전]이었습니다. 이미 <그래서 오늘은>을 통해 소개해 드린 적도 있지요. 그 책의 서문에 자매애를 언급하며 10년 터울의 [마음사전]과 마주하는 이야기가 너무 좋은 겁니다. 그래서 서가에 #마음사전 과 #한글자사전 을 나란히 두었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옆에 #수학자의아침 이 놓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죠. 그러던 중에 신작 산문집 소식에 반갑게 맞이한 책. #그래서오늘은 #김소연 시인의 #사랑에는사랑이없다 입니다.
-
-
멜로드라마처럼 사랑을 도구로 삼아 사랑을 소비해 온 문화들을 우선 사랑의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사랑을 낭만의 영역이라 치부하고 탐구를 외면해온 시선 역시 사랑의 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사랑을 소비할 줄 안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작동되었다. 이렇게 사랑의 적들을 따라가며 사랑을 완수하고 있으니,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울 리 없다. ~ 사랑을 멜로로 연결 짓고 식상해하던 습관이 사랑에 대한 결례라는 걸 우선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은 사랑의 반대편에 있지 않고 사랑의 내부에 매복해 있다는것도 알아채야 했다. -프롤로그_사랑의 적들 중에서
.
우리는 사랑없는 사랑을 사랑이라 믿으며 사랑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걸까요? 당연하게 사랑이라 믿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는 사랑이 과연 사랑이 맞을까요? 사랑으로부터 사랑을 빼앗는(?) ‘사랑의 적’들을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작가의 글은 다양한 관계에서 사랑의 모습들을 그려나가며 사랑의 부재를 증명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설렘, 두근거림, 반함’ 이상의 사랑을 꿈꾸지만 끝내 한계를 드러내는 사랑, 두 사람의 ‘차이’와 그 연인을 둘러싼 주변의 비루한 관성에 ‘헤어짐’이란 최선의 선택을 하고 마는 사랑, ‘온전하고 이상적인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서로를 불행으로 몰아 넣는 사랑, 대상보다 소유 가능 여부가 우선하고, 대상에 자신의 안목을 투영하고, 대상을 집단과 개인의 애호라는 범주에서 가늠하고 한정하는 사랑, 관계의 지속보다 한 줌의 로맨스로 발화할 때 더 아름답다 여겨지는 사랑, 사랑을 받는 일에 서툴러 어그러지고, 생활의 안정감과 욕망의 상실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랑… 작가의 주변의 이야기이거나 다른 이의 시와 소설에서 차용하는 사랑함에 당황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이 계속 이어질수록 우리 시대의 사랑은 연약한 속살을 드러냅니다.
.
-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완성하는지를. 사랑의 무수한 결을 차곡차곡 조심스레 펼쳐서 잘 키워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기에 인간의 삶은 너무 길고,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인간의 삶은 너무 짧은 것 같았다. -p.23
.
- 자세한 속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나면, 돌아서서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했던 말들이 벌 떼처럼 그녀를 애워싸고 윙윙댔다. 그녀는 자신이 뱉은 말들 속에서 벌에 쏘인 것처럼 앓았다. -p.31
.
-
서로를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 없는 사람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가 가족에게는 있다. 이 당위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보장해주면 좋으련만, 사랑이 지닌 위험으로 기울 때가 많다. -p.39
.
-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 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 테지요.”라는 말을 그녀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이후로 그녀에겐 하나의 능력이 생겼다. 도처에서 불쑥불쑥 솟구치는 로맨티스트들을 관찰하는 일. -p.61
.
-
안으로 들일 수가 없으면서도, 고마움을 사랑이라고 믿으며, 행복한 얼굴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삶, 안으로 들일 수가 없다는 사실에 눈알이 빨개져 눈물 흘리는 제임스의 고통은 누구와 어떻게 나눌 수 있는 걸까. 그 사실을 누구에게 고백할 수 있을까. -p.71
.
오늘도 소개는 여기까지 합니다. 읽는 내내 혼자 읽고 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잠이 든 사람을 깨워 함께 읽고 싶었습니다. 너도 읽고 나도 읽고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한줄 한줄 함께 읽어나가고 싶었습니다. 귀찮다면 밤새워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사랑에 관해 적나라하게 진실한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 속에는 함께 살면서도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저의 마음도, 지금은 잠들어 있는 그 사람의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꼭 그렇게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중간중간에 읽는 것을 멈추고 서로의 얘기를 나누어 보아도 좋겠습니다. 결론은 말씀드려야죠? 작가의 에필로그에 잘 나와있습니다.
.
-
우리가 학습해온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힘도 없다. 하지만 사랑함은 그렇지 않다. 삶이 사랑함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에필로그_사랑함 중에서
.
멋지죠? 하하 밤을 새워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어제 오대표가 소개한 #올가토카르축 의 #잃어버린영혼 도 생각나구요. 젊은날부터 늘 제 사랑의 중심을 잡아주던 친구의 말도 생각납니다. “사랑은 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