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허수경 시인이 2009년 1월 19일 부터 한국일보에 <시로 여는 아침>을 연재하며 소개한 시들과 그 시(시인)들에 대한 러브레터입니다. 그러니까 유작이 아니지요. 그래서 조금은 슬픔을 거두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시인이 사랑하는 시들에 대해 전하는 열렬한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수경 시인의 생기있는 뜨거운 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오늘은 #허수경 시인이 사랑한 시 #사랑을나는너에게서배웠는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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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의 <잡담 길들이기 3>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쓸모없는 남자의 젖꼭지를 얘기하며 인간이 수태되었을 때는 모두 여자였다가 몇 주 후 남성으로 결정된 수정체는 이후 9개월동안 호르몬으로 남성이 완성되지만 처음의 젖꼭지는 지우지 못한다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여자가 남자가 되었다구?'로 시작해서 '남자는 처음에는 여자였다구?'로 끝나는 이 시를 소개하는 허수경 시인의 글은 이웃의 노부부 이야기 입니다. 가끔 정원 일을 하다가 말을 섞는 다독다독 잘 사는 노부부. "우리 남편은 달걀 하나도 못부쳐요"라며 귀엽게 흉을 보던... 어느날 부인이 갑자기 쓰러져 몇 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도움될 일이 있다면 말씀하시라는 시인의 말에 달걀을 전자레인지에 삶아도 되느냐고 묻던 남편은 며칠 후 병원의 부인에게 가져다 줄 닭죽의 맛을 봐달라고 시인의 초인종을 누르지요. "닭죽 끓이는 법은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질문에 자랑스레 다답합니다. "우리 마누라가 시키는대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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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이
내 속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는 건
언제나 나다
나보다 울고 싶은 놈이
울지 않는데
내가 울어봤자
뭐가 달라지나
나보다 울고 싶은 놈을
때려서 울리려고
데굴데굴 다다미를
굴러는 보지만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는 건
언제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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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고 싶은 놈> -이시하라 요시로 / 유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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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요시로(1915~1977)의 시를 소개할 때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입니다.
- 20세기 초에 태어났던 많은 이는 청년시절을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등등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사실 마음속에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을 안고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은 정작 울지를 않고 내가 울어야 하는 삶! 거대 역사가 가혹한 것은 한 인간이 개인으로 살아갈 권리를 이렇게 제한해버리는 대목에 있다. 거대 역사여, 캄캄해서 무섭다. 21세기는 좀더 다른 세기였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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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이웃의 이야기와 거대 역사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시인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시인이 사랑한 50편의 시와 각 시에 붙이는 시인의 글을 만나는 페이지 하나하나 소중하게 넘기게 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