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여성이 쓴 여성의 서사’에 관심이 가던 때라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무척 반가웠다.
첫 페이지에 떡하니 그려진 가계도를 보고 빵 퍼졌다. 등장인물이 많은 책을 읽을 때면 가계도가 절실히 필요한데, 그 수고로운 일을 안 해도 되는 친절이 살짝 고마웠다.
심시선의 10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 가족은 그녀를 떠올릴 만한 경험, 물건, 기억 등등을 모아온다. 그 여정 속에서 시선이 가족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 가족 각자의 삶에 어떻게 머무르고 있는 지 보여 진다.
모계사회임을 강조하며 이 집안의 대장은 자신이라는 첫째 딸 명혜, 심시선이 손주들의 성을 제대로 붙여 부르지 못하자 자신 하나쯤은 엄마의 성이어도 되지 않을까 해 성을 바꾼 명은, 혈연이 아닌 함께 공유한 문화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가족이 된 경아는 현재의 ‘심시선’들이다.
정체성을 쪼개서 말하는 수는 없겠지만 ‘엄마’, ‘인간’ 이외에 ‘여성’이 있었음에 공감했고 과거와 현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나 이전의 여성들은 나에게는 어떤 의미이며, 미래의 여성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능력이 있는 가난한 동양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분노의 대상으로 위험한 사고를 당한 화수, 양육과 간병으로 인해 일을 멈춘 난정을 보면서 머릿속이 뜨근해졌다. 경찰과 군인에 의해 학살 당한 시선의 가족얘기까지 오면 ‘이런!...’하며 습관적으로 심각해지는 읽기 습관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그 읽기 습관이 맥을 못 추었다. 사건과 사고에 매몰되지 않게, 마주보게 하되 내가 원하는 것이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평가만이 아님을, 관심은 깊어지고 확장되되 그것에 빠져서 유쾌, 상쾌, 경쾌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글 덕분이었다. 기분 좋은 긴장과 깊고 가벼운 다독임이 이번에도 참 좋았다.
-인스타그램 @josumi16 님의 <어쩌다 쓰기> 중에서